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도 일본어설 (문단 편집) === 지명에 대한 검증 === 반도 일본어설의 근거로 거론되는 것은 대부분 일반 명사나 수사, 지명이나 인명 등의 고유명사이다. 특히 역사학자 및 언어학자들은 [[경덕왕]]의 한화 정책 이전에 사용되었던 한반도 남부의 옛 지명들이 [[한국어]]보다는 [[일본어]]와 유사하다는 것을 강력한 근거로 들고 있다. 찬성론에서는 지명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기에[* 예를 들어 [[홋카이도]]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지명들은 야마토 민족이 홋카이도를 점령하기 전 [[아이누]]들이 지은 [[아이누어]] 지명을 [[음차]]만 해서 사용하고 있다. 유럽의 여러 강들의 이름도 선사 시대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여 이를 이용해서 [[고유럽 제어]]를 재구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.], 경덕왕이 바꾸기 전의 지명은 반도 일본어족이 지은 것이기에 일본어와 유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. > 化昌縣本知乃彌知縣景徳王改名 > 화창현은 본래 지내미지(tinəmiti)현이었는데,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. > ---- > 西畿停本豆良彌知停景徳王改名 > 서기정은 본래 두량미지(turamiti)정이었는데,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. > ---- > 單密縣本武冬彌知一云曷冬彌知景徳王改名 > 단밀현은 본래 무동미지(mutuŋ miti) 혹은 갈동미지(katuŋ miti)였는데,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. > ---- > 道安縣本刀良縣景徳王改名 > 도안현은 본래 도량(tora)현이었는데,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. 위 기록들은 전부 [[삼국사기]]에 기록되어 있는 [[신라]]의 옛 지명들 중 일부이다. [[경덕왕]]의 한화 정책 이전 본래 지명인 tinəmiti, turamiti, mutuŋ miti/katuŋ miti, tora는 한국어 지명이라고는 보기에는 어색하지만, [[알렉산더 보빈]]은 이 지명들을 일본어로 쉽게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. * 먼저 tinəmiti의 경우, 고대 일본어 속격 조사 -nö [nə], 고대 서부 일본어에서 길이라는 뜻의 mîti로부터 ti-nö mîti를 얻을 수 있다. 고대 서부 일본어 ti는 '피, 우유, 아버지, 힘'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며, 보빈은 tinəmiti의 의미는 고대 일본어로 '강한/견고한 길'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.[*A Alexander Vovin(2013) - From Koguryǒ to Tamna] * turamiti의 경우, 고대 서부 일본어에서 tura는 앞, 얼굴이라는 의미이며, mîti는 상술했듯이 길'이라는 의미이다. 따라서 turamiti의 의미는 고대 일본어로 앞길에 있는 정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고 추측했다.[*A] * mutuŋ miti의 경우, 상술했듯이 miti는 고대 서부 일본어로 길이라는 뜻이다. 또한 고대 서부 일본어는 음절말 자음이 없었음을 염두에 두면, mutuŋ은 고대 서부 일본어 mutu '친밀한, 가까운'과 비교해볼 수 있다. 따라서 mutuŋ miti는 은밀한 길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, 경덕왕이 지은 단밀(단지 은밀함)에도 일부 보존되어 있다고 추측했다. mutuŋ miti의 또다른 이름인 katuŋ miti의 경우, 고대 서부 일본어로 합치다라는 뜻의 kate-와[* 고대 서부 일본어 kate- 합치다는 모음 동사로, 한정형은 kat-uru이다. 반도 일본어 katuŋ은 후행 비음 앞에서의 kat-uru > kat-uŋ의 변화가 일어났거나, 혹은 더 현실적으로 반도 일본어에서 동사 활용의 한정형은 고대 서부 일본어와 다른 형태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.] 길을 의미하는 mîti로 번역할 수 있으며, 합쳐지는 길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.[*A] * tora의 경우, 고대 서부 일본어로 호랑이라는 뜻의 tôra로 쉽게 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.[*A] [[진한]]과 [[신라]] 외에도 [[변한]] 및 [[가야]]계의 몇몇 소국들의 이름을 예시로 들 수 있다. 이를테면 변한 및 가야의 소국 중에서는 '''[[미오야마국|미오야마(彌烏邪馬)]]'''와 '''[[사이기국|사이기(斯二岐)]]'''라는 국가가 있다. 이 두 국가들의 국명은 한국어로 보기에는 상당히 낯설지만 일본어와는 괴리감이 없다는 점에서 근거로 쓰이고 있다. 특히 미오야마에서 일본어로 산을 뜻하는 야마(やま, 山)를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. 이와 관련하여 미오야마(미오산)라는 명칭을 [[일본 신화]]에 나오는 [[나라현]]에 위치한 미와야마(미와산)와 관련짓는 주장도 있다.[* 미와야마에 있는 오미와 신사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중 하나로,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도 기록되어 있다. 이 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뱀신으로, 신화에 의하면 이 신은 '''신라계 도래신'''이라고 한다. 미와야마는 오미와 신사가 지어지기 훨씬 전부터 신이 사는 산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.] 다만 미오야마 국명 반도 일본어설에 대해서는 비판도 있다. [[말 마]](馬) 자는 [[주조마국]]처럼 다른 나라 이름에서도 이름 뒤에 붙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일종의 [[접미사]]로 보는 주장이다.[* 물론 기록상 말 마 자가 이름 뒤에 붙는 경우는 미오야마국과 주조마국이 전부이다. 이와 관련이 있는지 확실치 않지만 [[마한]]에서의 마도 말 마 자를 사용한다.] 미오야마국에서 마 자를 접미사로 보고 제외하면 미오야국이 되는데, [[구야국]]이나 [[안야국]]에서 볼 수 있듯 삼국지 동이전에서 야(邪) 자로 끝나는 나라 이름은 여럿 존재한다. 그리고 만약 말 마 자가 접미사라면, '야마'를 세트로 묶어서 추정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부정된다. 또한 미오야마라는 말에서 가야의 또 다른 명칭인 [[임나]](미마나)가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. 이 주장에서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임나의 음운에 중점을 두어 미오야마라는 명칭은 미마야오(彌馬邪烏)나 미오마야(彌烏馬邪)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. 알렉산더 보빈은 [[탐라]]의 이름 역시 고대 일본어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. 탐라가 '타미(民 - 백성)'+'무라(村 - 마을)', 혹은 '타(田 - 밭)'+'무라(村 - 마을)'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. 즉 [[제주어]]가 탐라에 건너가기 전 제주도의 토착 국가로 추정되는 [[주호국]]의 토착어인 [[탐라어]]가 일본어족이었다는 주장이다. 그러나 탐라에서 타가 타(田)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탐(耽)의 당시 한자음이 /*tom/이었음을 간과한 것으로서 신빙성이 떨어진다. 게다가 고대 일본에서는 '토라(度羅, トラ)'라는 명칭으로도 불려졌다는 상반되는 증거도 있다. 일본의 전통 궁중 음악 [[가가쿠]](아악)의 탐라 음악도 이를 따라 '토라가쿠(度羅楽)'이다. 그러나 적어도 탐라의 뒷부분만큼은 보빈의 가설대로 반도 일본어족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. 《[[수서]]》에서는 탐라를 탐모라(耽牟羅)라고 표기했는데, 여기서 모라(牟羅)라는 지명 요소는 《[[일본서기]]》[* 529년 3월 신라가 공략한 성들 중 하나인 포나모라(布那牟羅), 동년 4월 왜국의 [[오우미노케나]]가 머무른 [[가야]]의 [[창원시/역사#s-1|구사모라]](久斯牟羅), 530년 9월 기사에서 등장하는 이사지모라성(伊斯枳牟羅城), 구례모라성(久禮牟羅城), 등리지모라(騰利枳牟羅), 모자지모라(牟雌枳牟羅), 그리고 554년 12월 백제의 [[위덕왕|부여창]]이 요새를 쌓았다는 구타모라(久陀牟羅)가 기록되어 있다.], 《[[양서(역사책)|양서]]》[* 6세기 신라인들은 왕성을 건모라(健牟羅)라는 명칭으로 부른다고 기록했다. 이는 《[[남사]]》에도 실린 내용이다. 健(건)은 '큰'의 음차로 '[[건길지]]' 할 때의 백제어 鞬(건)과 같으며, '牟羅'가 '마을'이라면 '健牟羅'는 '큰마을'이라는 뜻일 것.], 〈[[울진 봉평리 신라비]]〉[* 524년 1월 15일의 기록으로, 울진 지역에 거벌모라(居伐牟羅)라는 지명이 있었다고 한다.] 등 삼국시대의 각종 문헌에서 문증되며 《[[삼국지(정사)|삼국지]]》[* 〈위서〉 동이전에 기록된 [[마한]]의 54개국 중 [[자리모로국]](咨離牟盧國)과 [[모로비리국]](牟盧卑離國)이 있다.], 〈[[광개토대왕릉비]]〉[* 396년 고구려 [[광개토대왕]]이 점령한 옛 백제의 성들 중 구모로성(臼模盧城), 각모로성(各模盧城), 모로성(牟盧城), 모루성(牟婁城), 고모루성(古牟婁城)이 있다고 기록했다.], 《[[삼국사기]]》[* [[전라북도]] [[고창군]]의 백제 시절 지명으로 모량부리현(毛良夫里縣)이 등장한다.]에도 비슷한 단어가 등장한다. 학자들은 이 단어를 보통 [[일본어]]의 [[무라]](むら)와 연관지어 '''마을'''이라고 해석하는 편이다. 다만 이 어휘가 차용된 방향성은 알 수 없다. 반도 일본어파의 잔재일 수도 있으나 반대로 고대 한국어 어휘가 일본조어로 넘어갔다가 되려 한국어족에서는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. 그리고 [[위키낱말사전]]에 따르면 한국어 '무리(중세 한국어: 물)'과 관련짓는 견해도 있다.[[https://en.wiktionary.org/wiki/Reconstruction:Proto-Japonic/mura|#]] 참고로 [[중세 한국어]]에서 '(/*mʌzʌlh/)'이었던 현대 한국어의 '마을'과는 별개의 어원을 가진다. 또한 모라(牟羅)와 모로(牟盧)는 산(山)을 뜻할 가능성도 있는데, 그 근거로는 《[[일본서기]]》에 '''구례모라성(久禮牟羅城)'''이 '''구례산(久禮山)'''이라고 표기되었다는 점, [[모로비리국]]의 옛 땅이 신라에 편입된 후 '''[[고창군|고창군(高敞縣)]]'''이 되었다는 점,[* 신라는 한화정책을 실시할 시 '산'에 대응하는 어휘를 山 말고도 高로 번역하기도 했다. 또 다른 예는 본래 고구려의 달홀(達忽), 즉 '산성'이었던 [[고성군(강원특별자치도)]].] 《[[용비어천가]]》에 '''피모로'''라는 산 이름이 나온 점 등이 있다. 그리고 고구려 지명 중 고구려어로 산을 뜻했던 달(達)이 들어간 경우가 많았듯이,[* [[토산군|오사함달]], [[연천군|공목달]], [[고창군|달홀]] 등.] 산악지대가 많은 한반도 특성상 현대 대한민국이나 북한의 지명에도 山자가 들어간 곳은 매우 많다. 탐라가 위치했던 제주도야 [[한라산]]이라는 대표적인 산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